단 한 개의 난자 - 기적을 기대하다
이삿날과 겹쳐 힘들게 시작한 세 번째 시험관 시술이다.
그래도 난자가 잘 나와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처방받은 주사를 잘 맞고 예약한 날짜에 맞춰 병원에 갔다. 원장님께서 초음파를 보시더니 지난번보다 목소리가 밝지 않으셨다.
"난자가 한 개 자라고 있네요. 옆에 아주 작은 난자가 한 개 있고요. 2차 때처럼 난자가 잘 나와줬으면 좋았을 텐데. 우선 나온 난자를 잘 키워봅시다."
난자가 두 개 나왔다니, 그중에도 잘 자라고 있는 것은 하나라니 낙담이 되었다. 그래도 혹시 아는가? 이번에 나온 난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소중한 난자를 잘 키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가르투란, ivf-m75는 병원에서 맞았다.
원장님께서 지난번에 한 피검사 결과,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정상범위이지만 임신하기에는 수치가 좀 높다고 하시며 내과에 한번 가 보라고 하셨다. 내과에 가서 다시 피검사를 했다. 내 팔목에 바늘을 꽂는 것이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는 과정이지 않는가? 피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한 시간 가량을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내 이름이 불리고, 원장님을 뵈러 들어갔다. 원장님께서는 갑상선 수치가 임신하기에는 좀 높다며 갑상선 약을 먹자고 하셨다. 나는 내 호르몬이 정상인데, 호르몬 약을 먹는 것이 조금 꺼림칙했다.
[나] "호르몬 약을 먹으면 건강상으로는 괜찮을까요?"
[원장님] "건강한 아이를 낳으려면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원장님이 바빠 보이셨고, 약을 먹기로 이미 결론이 난 것 같았다. 그래서 처방받은 갑상선 약을 약국에서 받아왔다. '이런저런 호르몬 약으로 내 몸을 교란시켜도 괜찮을까? 건강한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하리오?'란 여러 생각의 줄다리기 끝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맘을 다잡았다.
집에 오면서 난자가 나와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했다. 난자가 안 나왔으면 어쩔 뻔했는가? 나온 난자를 잘 키워야겠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공복 상태에서 갑상선 약을 먹고 난자 질에 좋다는 '미오이노시톨'을 먹는다. 엽산, 유산균도 먹고, 여러 영양제들을 먹는다. 아침에 주사 맞을 시간이 되면 배에 주사를 놓는다. 시험관 시술을 몇 번 하다 보니, 내 배에 주사를 놓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난자 채취하는 날이 다가오자 다시 마음이 어려워졌다.
난자 채취는 많이 아프다. 채취할 때도 아프지만 채취한 후도 힘들다. 이 과정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원장님께 난자 채취를 안 할 수는 없는지 여쭤봤다. 그랬더니 인공적으로 키운 난자라 채취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난자 채취하는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난자 채취하는 날이 왔다.
이번이 난자 채취 세 번째이다. 시험관 시술 1차 때에는 난자 채취를 멋모르고 했고, 두 번째는 시험관 시술들을 하는 것이 서러워 눈물이 났다. 난자 채취 세 번째, 이번에는 몸이 덜덜 떨렸다. 여러 번 했으니 용기를 낼 만도 한데, 난 겁쟁이인 것인가? 원장님께서 초음파를 확인하고 딱딱한 기구를 넣고 소독을 한 후, 능숙한 손놀림으로 난자를 채취하셨다.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은 지난번보다는 덜 아팠던 것 같다. 난자 채취 후, 다른 침대로 옮겨져 옆에 병실로 왔다. 난자가 한 개 채취되었다고 한다. 옆에 있던 작은 난자는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난자 한 개가 나와줘서 얼마나 감사한가? 질 좋은 난자이길 기도했다. 항생제, 유트로게스탄, 질정을 처방받아 왔다. 집에 도착해 남편과 맛있는 점심식사를 시켜 먹었다. 거즈를 오후 5시에 뺐는데, 조금 피가 묻어 나왔다. 난소가 잘 회복되라고 이온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난자 채취를 한 후 그 날 새벽, 잠을 자다 중간에 깼는데 너무나도 어지러웠다. 아마 유트로게스탄 약 때문인 듯하다. 화장실을 기어가듯 갔다. 겨우 침대로 돌아와, 다시 잠에 들었다. 난자를 채취하고 나서 몸이 계속 아픈 것 같았다. 채취한 자리가 찌릿찌릿하고 몸이 아팠다. 그러나 아픈 몸보다 '난자가 잘 수정되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시험관 1차 때, 수정까지 가지 못하고 시험관 시술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배아 이식은 하지도 못했었다. 다행히 약을 멈추라는 전화가 병원에서 오지 않았다. 그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난자 채취 후 상상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마치 하나님의 은혜가 비처럼 반짝반짝 배아에게 내리는 장면을.
감사하게도 병원에서 문자를 받았다.
배아 이식 안내
[Web발신]
햇살샘님, 9월 3일(목요일)은 배아 이식일 입니다. 오전 11시 30분까지 내원하십시오.
*난자채취이후 수정갯수와 배아상태는 이식할 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주차는 주차타워를 이용해주세요.
난자가 비록 한 개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배아 이식의 기회가 주어졌다. 너무나 기뻐서 남편에게 바로 전화해서 배아 이식을 할 수 있음을 알렸다. 그날 밤, 새벽 3시경 잠이 깼다. 태풍 마이삭의 거센 바람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온몸이 근육통이 오듯 아팠다. 힘든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났다. 밖을 보니 태풍도 지나가고 비가 멈춰있다. 아침 햇빛이 베란다 창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늘 아침은 오는 거야! 아침을 먹고 빨래를 돌렸다. 질정을 넣고 흡수를 위해 잠시 누워있다가 일어났다.
배아 이식 당일, 예상시간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했다. 착상이 잘 되도록 단백질 주사를 맞았다. 내 이름표를 살펴보니 ‘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살펴보니 별이 없었다. 이는 마치 학교에서 선생님들께서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학생을 ‘별’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난자수가 적고 어려운 케이스라 ‘별’이 붙었나 보다. 왠지 모르게 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입장이 헤아려졌다.
난 세 번째로 배아 이식에 들어갔다.
“햇살샘님”
간호사님이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이동 침대에서 시술대로 옮겨졌다.
“배아 상태는 어떤가요”
“괜찮아요. 미세 수정했고, 속도가 느리긴 한데 정상적으로 크고 있어요.”
감사, 감사하다. 배아 이식을 마치고 단백질 주사를 다 맞은 후, 간식을 받고 병원을 나왔다. 자가운전하는 것이 걱정되었는데, 간호사분께서 1시간 정도 자가운전은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약국에 들려 처방받은 약을 받았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3시경이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집에 와서 냉장고 속에 있는 음식을 꺼내 밥을 챙겨 먹었다. 배아가 정상적인 속도로 잘 크고, 착상도 잘해 주길!
배아 이식 후 증상은 참 애매하다. 배아 이식 후 넷째 날은 배 통증이 좀 심했다. 소화 쪽 배가 아픈 건지, 자궁 쪽 배가 아픈 건지 잘 구분이 안 간다. 지난번 시험관 차수와 비슷한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에 이 통증을 느꼈을 때는 너무 놀랐었다. 혹시나 배아가 탈락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당시, 놀란 나를 위해 시어머님께서 배 위에 손을 대고 기도해 주시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번에는 자연히 그러려니 하고 배에 온기가 전해지게 내 손을 얹었다. 누워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조금 안정이 된다. 착상이 잘 되고 있을까?
배아 이식 후 다섯째 날에는 약간 싸하게 배가 아팠다. 질정을 넣고 EBS 영어방송을 들으며 누워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잠이 든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그러나 배아가 크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시험관 시술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마음을 비우고, 내 자신을 토닥여본다.
드디어 임신 수치를 확인하는 대망의 피검사 날이 왔다. 아침에 미리 임테기를 해 보았더니, 임신테스트기는 냉정하게 한 줄을 나타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역시나 하며 마음이 쿵 가라앉는다. 큰 기대 없이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아래층에 있는 내과에 가서 원장님과 상담을 받았다. 내과 원장님은 앞으로 임신하길 원하면 갑상선 약은 쭉 먹으라고 하셔서 신지로이드를 처방받았다. 약제비 지원 신청을 위해 약국에서 영수증을 받고 남편과 전화하다 처방받은 약을 약국에 두고 와 버렸다.
1시간 걸려 운전해서 집에 왔는데,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모르는 번호를 확인하니, 약국에서 온 전화였다. 약을 두고 왔다고 했다. 내일 다시 광주를 가거나 택배를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 거지?'
오후 4시경,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임신이 안 된 줄 알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에 3시 50분부터 좌불안석이었다. 4시 10분경,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임신이 되지 않았다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간다고 들었는데,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다고,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슬프기보다 앞이 막막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난임 휴직이 어느덧 후반기에 들어섰다. 올해는 생일이 반갑지 않다. 나의 육체의 나이가 더 들고, 그러면 임신이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올해 임신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란 불안감이 큰 것 같다. 내년에 또 난임 휴직을 연장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하다. 휴직을 하자니 재정적으로 걱정이 되고, 복직을 하자니 일하면서 시험관 시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난임 휴직 동안 쉴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호르몬으로 인한 체력 저하, 시험관 시술 후 후유증, 무엇보다 기대 뒤에 뒤따라오는 실망의 무게가 내 마음을 짓누른다. 감사할 것들을 찾아보자. 감사한 것들을 생각하자. 비록 난자가 한 개 나왔고, 기적의 주인공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난 살아있다. 소중한 가족이 있다. 힘내서 입꼬리를 올려본다. 눈을 반달로 만들어본다. 웃는 얼굴을 보고, 마음도 웃을 수 있도록.
· 업데이트 날짜: 2021.1.25
· 해당 글은 브런치 작가'햇살샘'의 작품으로 최신 글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하세요!
· 원문보기: https://brunch.co.kr/@bsy1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