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힘들다. 난임이.
계류유산이 마무리 된 마지막 진료 날 병원을 나서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유산은 잘 마무리됐고 이제 몸조리를 잘하면 된대. 약물로 끝나서 시술은 빠르면 두 달 뒤쯤 다시 시작 가능한가 봐. 선생님이 냉동이 하나밖에 없다고 신선을 한번 더 하자는데? 수정란 유전자 검사도 했으면 한다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니까 그건 하지 말까?"
고생했다고, 잘 쉬었다가 다시 힘내 보자고 말할 줄 알았던 남편의 입에서는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더 이상의 시험관 시술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뭐?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딩크로 잘 살다가 갑자기 자기가 애 낳자고 해서 여태 이 난리를 치고 겪고 흘러왔는데, 내가 한 번 더 그 힘들다는 신선 시술을 하겠다는데 네가 뭔데 시험관 시술을 하니 마니 해? 어차피 개고생은 내가 다 하는데!
돈이 문제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왜 그러냐고 했더니 우린 어차피 시험관 시술은 한 번만 해보기로 한 것 아니었냔다.
맞다. 임신이 너무 안되니까 마지막으로 시험관을 한 번만 해보기로 한 것은 맞았다. 임신이 왜 안 되는 것인지 이유나 좀 알아보자고. 그런데 그렇게 안되던 임신까지 되었다가 유산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내가 미련이 생겼다. 애초에 착상이 안되었으면 그냥 접었을지도.
냉동이 두 개만 나왔더라도 냉동 이식까지만 해보고 거기서 끝을 냈을 텐데 애석하게도 냉동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고 병원에서도 신선을 한 번 더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신선 한번 추가와 거기서 냉동이 나온다면 냉동까지만 이식해보고 끝내야지라고 혼자서 마음을 결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네가 시술을 안 한다고 해?
병원도 거의 나만 왔다 갔다 했고 몸도 나만 아팠고 주사도 나만 맞았고 유산은 내 몸에만 엄청난 데미지를 안기고 끝났다. 지금도 걸을 때마다 오른쪽 무릎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
출산은 밤이 익어서 자연스럽게 밤 껍데기를 빠져나온 것이라면 유산은 익지도 않은 밤 껍데기를 강제로 뜯어내서 속을 긁어낸 것이라고 했다. 때문에 다른 형태의 충격으로 몸에 무리를 준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다 거치고도 재시술을 결정했는데. 그런데 내가 아니고 남편이 시술을 안 하겠다니. '네가 뭔데!'소리가 절로 나왔다.
너무 화가 나서 결국 하지 말아야 될 소리를 하고 크게 싸웠다. 너 때문에 난임일 수도 있는 건데 네가 왜 시험관 안 한다고 해? 그리고 이번에 유산된 건 당신 집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일 수도 있어!
앞에도 말했지만 난임의 원인은 원인불명이었다. 그리고 초기 유산은 유전자 문제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남편이 내가 하자는 대로 안 한다고 하니 심통이 잔뜩 났고 난임과 유산이 니 잘못이니 내 잘못이니 하는 말 그대로 개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이 난임 시술... 사람을 참 치사하고 뭐같이 만든다.
***
화가 나서 며칠간 남편과 데면데면하게 지냈지만 한편으로는 저 사람을 이해해보려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이를 더 원하는 것은 남편이 아니었던가? 주위에 난임시술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우리 같은 케이스도 없을 것 같아서 조언을 얻을 곳이 없었기에 결국 난임 카페에 글을 올려봤다. 이러저러한데 남편이 더 이상 시술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난임 카페 구성원은 대부분 여자들이니 여자가 시술을 감내하겠다는데 고마워서 절은 못할망정 왜 안 한다고 하냐, 혹시 비용적인 문제냐 등의 의견이 올라왔고 어떤 사람은 나보고 시술 과정 내내 남편을 미친 듯이 잡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ㅋㅋ 음. 나는 안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그 댓글에는 바로 반박글이 줄줄 달렸다. 과배란을 하면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데 남편이 그것도 못 받아주냐며.
그 와중에 한 가지 눈에 띈 글이 있었다. 그 댓글 난리통을 뚫고 어떤 남자분이 작성한 글.
아마 남편이 마음이 많이 다쳐서 시술을 다시 하는 것이 두려운 것 같다고. 자기도 그랬다면서. 와이프가 너무 힘들어하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본인이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했단다.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
난임시술은 여성들이 전적으로 희생되는 시술이다 보니 남편들은 보조자 정도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 같다. 말 그대로 객체의 위치. 난임의 세계에서는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소식을 기다리는 남편은 번외도 아닌 논외로 치는 것이 현실이므로. 오죽하면 난임 병원 선생님들도 남편은 시술 날 오는 것 빼고는 할 일이 없다고 혹시 담배 피우면 금연이나 하시라고 말할 정도니까.
하지만 남편은 웨딩촬영과 결혼식에서 들러리가 된 것도 불만이었던 굉장히 자기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쪽에 가만히 계세요'를 또 당했다.
여자들은 시술 과정을 본인 몸에 진행하기 때문에 내 몸이 변화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아프고 그래서 서럽다. 하지만 내 몸이 반응하는 모든 것을 직접 겪으면서 느끼기 때문에 난임 시술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뚜렷하게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그 옆에서 아내가 단순하게 전달하는 내용만으로 상황을 짐작해야만 한다. 어떤 날은 그냥 이유 없이 짜증을 부리고 어떤 날은 왜인지 모르게 우울해하고 어떤 날은 몸이 아프다고 한다.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 따위는 당연히 없다.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지만 심신이 불편한 아내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봐 물어보지 못하거나 원래 성격상 자분자분 세세하게 물어보는 성격이 못되어서 궁금해도 꾹 참았을 거다.
때문에 남편은 궁금해서 병원에 최대한 같이 갈 수 있으면 따라오려고 했고 난임 병원 진료실 상담은 기나긴 대기 후 3분 컷이라고 말을 해도 굳이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 보고 싶어 했다. 그래놓고 쭈뼛거리다가 한마디도 제대로 못 물어보고.
결국 남편은 의지할 것이 검색창 밖에 없었고 시술 기간 내내 남편의 검색창에는 별별 난임관련 단어들이 다 올라와 있었다.
여자는 공감을 잘하도록 태어나고 남자는 문제 해결을 열심히 하는 구조로 태어난다.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여자는 대화를 통해 공감을 얻고 싶어 하지만 남자는 그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서 조언을 하다가 싸움이 난다. 난임시술 역시 부부의 삶 속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여자는 이야기를 하며 상황을 공감받고 싶지만 남자는 이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이 시술에서 남자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호르몬 과다 투여로 우울하다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주사로 인해서 멍이 들었다는데 남편은 그 주사를 그만 맞으라고 할 수 없고 아파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남편의 좌절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가끔 남편이 '내 배에 시술할 수 있으면 내가 했지'라고 하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남편은 내가 병원 대기가 길어서 짜증 낼 때마다 '괜히 난임 병원에 가자고 해서 와이프를 매번 병원에서 두세 시간씩 멍하니 기다리게 만들었나' 후회했을거고 내가 배에 멍이 들었다고 아프다고 할 때마다 '주사를 대신 맞을 수도 없고'라고 생각했을거다.
나 역시 시술은 우리 부부끼리의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시술 과정 내내 늘 내가 더 힘드니까, 내 몸이 더 아프니까 하면서 남편의 마음이 시들고 지쳐가는 것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리고 유산이 진행되면서 남편 역시 '자기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한 상실감이 컸을 텐데 나는 내 몸이 아프고 괴롭다 보니 남편의 상실감을 안아주지 못했다.
사실 처음부터 아이를 원한 것은 남편이지 않았던가. 남편은 나보다도 더 큰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렸을 것이다. 임신인 것을 알고 '초음파 같이 보러가면 안돼?' 라고 물었던 사람이었다. 처음 초음파 사진을 건네주었을 땐 신기해서 보고 또 보고 하던 사람이었다. 난임병원은 심장소리를 들을 때 남편이 같이 초음파실에 들어갈 수 있었기에 조금만 기다렸다가 같이가자고 했지만 그 이후 남편은 초음파실에 같이 갈 수 없었다.
유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마 나보다도 남편이 더 크게 실망하고 속이 상했을 텐데 거기다 기름을 들이붓듯 네가 시험관 시술에서 하는 게 뭐가 있냐고 쏘아붙였으니. 나 같아도 시술 안 한다 소리가 나왔을 것 같다.
그렇게 난임은 남편도 많이 아픈 시술이었다.
***
그간 여보도 많이 힘들었지?라고 하니 남편은 굉장히 머쓱해했다. 시술하느라 내가 힘들었지 자기가 뭐 한 게 있냐면서. 저렇게 말해도 다 안다. 너도 나 몰래 울고 많이 힘들었던 거. 자기가 힘들어하면 내가 더 힘들어할까 봐 굳이 티 안 내려고 하고 내 앞에선 강한 척했던 것도. 같이 아파하고 같이 이겨내도 괜찮은데. 남편은 마음이 약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 원형탈모가 종종 찾아오는데 이번에도 백원짜리만큼 구멍이 났었나보다.
우리 둘 다 난임시술이 처음이라 우왕좌왕하고 힘들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기로 한 것이니깐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볼 거다. 남편은 한동안은 시술 안 할 거라며 챙겨준 약통도 안 갖고 가더니 이제 다시 빈 약통도 잘 꺼내놓는다. 그러더니 엽산약이 빠져있더라며 나에게 알려줬다. (아르기닌이니 코큐텐이니 이런 것들을 늘 미니 약통에 넣어서 식탁에 올려뒀는데 남편은 그간 반항하느라 안 가져가더니 다시 잘 챙겨 먹기 시작했다. 엽산은 이번에 바꾼 종합영양제에 포함되어 있어서 안 넣었는데 귀신같이 약이 빠진것을 알아챘다. 세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한편으론 '너 울었지??'라고 놀려먹을 기회를 놓친 건 좀 아쉽다. ㅎㅎ
· 업데이트 날짜: 2020.12.15
· 해당 글은 브런치 작가'당근쥬스'의 작품으로 최신 글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하세요!
· 원문보기: https://brunch.co.kr/@kkio09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