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시술이 실패하면
예상치 못하게 로또라는 신선 1차에 테스트기 두 줄이 나오면서 우리 부부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뻤다.
병원에서는 12주까지 고비가 많고 유산의 위험이 크니 무조건 조심하라고 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조심히 살았다. 난 이 좋은 날씨에 밖에 나간 것이 거의 손에 꼽힐 정도로 집에서 은둔생활을 했고 가계부가 폭발하든 말든 임신에 좋다는 것만 먹었으며 남편은 나와 함께 있을 땐 나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면서 온갖 집안일을 혼자서 다했다. 자주 놀라는 나 때문에 미안하단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랬던 우리에게 빈 아기집이 찾아올 줄은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험관을 하면서 실패를 맞이한다. 물론 자연 임신이나 시험관이나 실패율은 비슷하다는데 느낌상 시술 쪽이 실패율이 더 높은 것 같다. 아무래도 계속 검사를 하면서 찾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과배란 단계에 실패해서 난자가 제대로 채취가 되지 않거나, 수정란이 만들어지지를 않거나, 한 줄짜리 임테기를 보고 피검사 수치가 0점대로 나와서 착상에 실패하거나, 아기집을 보지 못하고 피검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해서 자궁 외 임신의 판정을 받아서 최악의 경우 나팔관을 절제하거나, 아기집을 보았다 한들 빈 상태로 아기집만 자라서 결국 수술을 하거나, 아기의 심장소리를 다 듣고 난 뒤에 갑자기 아이의 심장이 멎는 것을 보거나.
이게 다 10주 안에 벌어지는 일이다.
단계가 다음으로 넘어가면 갈수록 실패 시에 부부는 더욱더 충격이 커진다고 했다.
초기 유산으로 불리는 이 시기에 벌어지는 일들은 사실 유전자적인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부부와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인간의 몸은 대단히 예민하게 설계가 되어 있어서 잘못된 유전자가 착상을 해서 출산까지 이어지도록 그냥 두지 않는다. 임신 유지가 되지 않도록 자연적으로 막는 것이다.
수정란 이식 시에는 배아의 외관과 상태만 보고 골라서 이식하기에 유전자 문제를 발견할 수 없다. 때문에 PGS라는 배아 유전자 검사를 추가로 시행해서 이식하기도 한다. 이 검사는 배아 개수당 비용이 발생하고 한 개만 검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그리고 검사를 통과한 배아를 이식했는데 착상에 실패하면 방법이 없다.
어찌 보면 잘못된 유전자, 또는 기형아가 계속 살아남아서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도태되는 것이 생태계 보전적인 의미에서는 굉장히 훌륭한 시스템이지 않나 싶다. 근데 잘못된 유전자면 그냥 착상이 아예 안됐으면 제일 좋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질질 끌고 가서 우릴 희망 고문하는 건지.
8주에서 10주 정도면 적은 기간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임신을 확인하고 부부가 함께 기뻐하며 행복해하다가 그 이후에 찾아오는 실패라니. 우리가 뭘 어떻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힘든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
뭐 같은 인간들도 애 잘만 갖고 잘 낳고 살던데. 정말이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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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고 의료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했다 한들, 여전히 분만실에서 산모가 아이를 낳다가 죽는 경우가 발생하고, 애지중지 뱃속에서 키워온 아이가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기도 하며, 20주가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뱃속에서 죽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도 시험관 카페에는 아기집을 못 본 사람, 아기집이 빈 집인 사람, 그리고 20주인데 아기 심장이 멎어서 유도분만을 한다는 사람들의 슬픈 사연이 올라왔다. 난 지금 7주인데도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20주면... 그 마음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일이 그리 될 줄 짐작조차 못했겠지.
주위에서 너무 흔하게 임산부와 아이를 만나기에 우리는 너무 쉽게 임신과 출산을 생각하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부모가 된다. 내 동생도 아들 둘을 거의 연년생 텀으로 쉽게 가지고 낳았기에 나의 가족들 조차 내가 이렇게 어렵게 아이를 가져야 하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남들은 그렇게 쉬운데 너는 왜 그렇게 어렵냐며. 그 이유를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난임 병원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내가 이 시술을 실패할 것이라고, 고차수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자 채취하던 날 회복실에서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옆 베드 사람이 간호사와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 라며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베드는 커튼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말소리가 다 들리기에 본의 아니게 내용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정부 지원금을 다 소진해서 다른 서류를 떼어 달라고 했다. 정부지원금을 다 소진했다는 얘기는 신선 7차, 동결 5차를 시도했고 12회 다 실패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너무 밝아서 더 마음이 아팠다.
시험관 시술 한 사이클이 도는데 신선 기준으로 한 달 정도가 걸린다. 생리 2일 차에 병원에 가서 과배란 시행에 1주일, 채취 및 이식 대기 3~5일, 이식 후 10일 차에 1차 피검. 이렇게 하면 약 한 달이다. 여기서 실패하면 바로 다음 차수로 진행하거나 두어 달 쉬고 몸을 만든다.
실패하지 않고 나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주차가 계속 올라간다. 나처럼 아기집을 보거나 심장소리를 듣거나 하고 나서 실패했을 때 자연적으로 아기집이 배출되지 않으면 소파술을 시행해서 강제로 임신의 흔적을 다 제거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출산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몸에 데미지가 발생하며, 회복하는 데도 최소 두세 달이 걸린다. 다음 시술은 보통 생리 3번이 지나고 나서 진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만약 나처럼 빈 아기집을 본 상태로 실패하면 임신 8~9주 차에 수술을 하기 때문에 시험관 준비단계 한 달 + 임신유지기간 4~5주 추가, 수술 후 몸 회복기 3달. 이러면 거의 반년이 지나간다. 난임은 시간이 생명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1회 실패에 반년을 소모하고 나면 의지도 상실되고 시간도 지나가고 총체적 난국이 되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아픈 시간을 오롯이 부부끼리 견뎌야 되는 것은 옵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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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이왕 시작한 거 반년이라도 어릴 때 한번 더 시술을 할 것인지 여기서 스탑 할 것인지.
남편은 냉동 이식도 안 하겠다며 저러고 있지만 사실 나보다 더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은 남편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 남편은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라 정말 좋은 아빠가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악처에 다혈질이라 무섭고 사나운 엄마가 될 확률이 아주 높다. 근데 뭐 한 사람이라도 착하면 됐지.
한편으론 이제 나에게 애 안 낳는다고 막말하는 사람들에게 '저 시험관도 했고 유산했는데요'라고 말해버릴 생각을 하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그간 딩크라고 또는 애가 없다고 하면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던가. 이제 우리에겐 '오지랖은 좀 닥쳐줄래요'라는 무기가 생겼다. 저들도 무례하게 말하니 나도 저들을 불편하게 만들 거다. 근데 오지라퍼들은 자기 몸 아니라고 왜 될 때까지 시술 안 하냐며, 남들은 몇 번씩도 시술한다고 또 입방정 떠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아! 그럼 시술비 삼백만 원을 달라고 해야겠다 ㅎㅎ
· 업데이트 날짜: 2020.12.15
· 해당 글은 브런치 작가'당근쥬스'의 작품으로 최신 글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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