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달후에 가이드

딩크부부, 난임부부가 되다 (난임에세이)

빈 집

시험관을 할 때 주문 같은 말이 있다.
시험관은 주수에 맞게 맞춰서 진행이 되어야 한다는 말.
빠른 것은 상관이 없는데 느리면 안 된다고 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데 튼튼이는 주수보다 조금 느린 것 같았다. 임테기의 진하기나, 착상혈이 나온 시기나, 아기집을 본 시기나 크기나 등등의 것들이.

그냥 이식 후 착상이 며칠 늦었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

이번 추석 연휴에 나는 본의 아니게 임밍아웃을 해야 했다. 숨기기에는 명절이라는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사실 주위에서 12주 이전에는 말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나는 주위에 최대한 말을 안 했으면 싶었지만 어디 사람 사는 게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 히키코모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가족을 제외하고 시험관을 했던 친한 친구 한 명 외에는 사실 아무 데도 임신이 진행 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그냥 내가 시험관을 진행하고 있다 정도만 아는 사람들이 몇 있었을 뿐. 난임 병원을 다닌다는 것은 참 사람 관계를 좁게 만든다. 시술 일정이 빠듯하게 돌아가면서 몸이 불편하니 누구를 만나기도 애매하고, 이 과정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걸 일일이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그러다 보니 시험관을 했던 친구와만 자주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외의 지인들과는 거리를 두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 거리두기는 내 의사와는 상관이 없이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그렇게 시험관을 시작하고 나서 스스로 고립되어가는 시간이 두 달이 넘어서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꼼짝 않고 집안에 칩거한다고 누에고치라고 불렀다.

***

연휴가 끝나고 다음 병원 방문일은 임신 주차로 따지자면 6주 4일 차였다. 인터넷 카페에는 빠른 사람들은 5주 차에도 난황을 보거나 6주에 아기가 보여서 심장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저 사람들은 자기가 진행이 빠른 걸 자랑하고 싶어서 저렇게 글을 올리는 거냐고 짜증을 냈다. 남편은 그냥 사람들이 자랑할 게 없으니 괜히 아기가 좀 빨리 크는 걸로 부심 부리느라 글을 올리는 것이라고 하며 조바심 내지 말라고 했다. 

난임 병원에서 말하는 주차별 공식이 있었다. 5주 차 아기집, 6주 차 난황, 7주 차 심장소리. 시험관으로 착상이 성공하면 이 순서대로 진행이 되어야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5주 차 말에 간신히 턱걸이로 아기집을 봤지 않았던가. 그땐 턱걸이로라도 넘어가면 됐지 라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편이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번엔 6주 차이니 난황이 보여야 했고 빠르면 심장소리도 들려야 했다. 연휴 내내 나는 꿈에서 아기집이 비어있는 걸 보는 악몽을 꿨다. 자고 일어나면 마음이 뒤숭숭했고 계속 불안했다. 남편은 꿈은 반대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여전히 대기실은 사람이 많았다.
한참을 기다려서 들어간 초음파실에서는 아기집이 잘 자랐는데 비어있다고 했다.
아. 꿈은 반대라더니 왜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것일까.



초음파실 선생님은 아기가 좀 늦게 크나 보네.라고 하셨지만 진료실에선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여태까지 상황으로 봐서는 진행이 더디고 이런 경우 예후가 별로 좋지 않다며 다음 주에 아기가 안 보이면 수술하라고.

머리로는 상황을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 갔다.
여태 병원에서 좋은 소리 한 번을 안 해주더니 결국은 또 이렇게 사람을 후려치네.

어찌 됐든 임신인 것은 확인이 된 것이니까 임신확인서는 주겠다고 했다.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임신하면 주는 바우처 금액으로 수술비 처리가 가능하다고.


빈집인 초음파 사진과 임신확인서를 받아 들고 보건소로 가는 길에 창피하게도 버스에서 자꾸 눈물이 났다. 남편은 그냥 튼튼이가 좀 늦는 거라고 했지만 여자들은 감이라는 게 있다. 아. 이젠 진짜 아닌가 보다.
남들은 그렇게도 쉬운 임신이 왜 이렇게 나는 힘들기만 하고 조마조마하기만 하고 마음만 아픈 일인지.

서럽고 속상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보건소 앞에 서서 엉엉 울다가 들어가서 간신히 임산부 등록을 하고 집에 왔다.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가지 말걸 그랬나. 근데 잘못될 때 잘못되더라도 무슨 마음에선지 보건소에서 주는 분홍색 임산부 배지가 받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배지를 받아 들자 속상한 것보다는 지금 내 상황에 갑자기 화가 났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이렇게 분노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너무 분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서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

집에 돌아와서 내 상태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계류유산일 수 있다고 했다. 수정란의 염색체 이상으로 아기가 집만 지어놓고 자라지 못하는 상태. 이것 역시 꽤 흔한 일이라고 했다. 뭐 이리 잘못되는 일들이 흔해 빠졌는지. 그렇게 흔한 일들 속에 무너지고 다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다니는 난임 병원은 초음파와 진료실이 분리되어 있으니 차라리 일반 산부인과에 가서 정확하게 의사 선생님과 함께 초음파를 다시 보라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원래 다니던 산부인과로 향했다.

맨날 버글버글한 난임 병원만 보다가 한산한 산부인과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병원도 사람이 많아서 오후나 토요일은 무작정 대기가 많다. 하지만 차병원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인터넷에는 난임 병원에서 유산 얘기를 듣고 병원을 옮겨서 멀쩡한 애기를 본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내가 어제 속상해서 올린 글에도 산부인과에 가보라는 댓글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금은 희망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과 같이 본 초음파의 아기집은 여전히 비어있었다. 하물며 크기가 어제보다 작다고 했다. 이런 경우에는 자연도태가 진행되는 거란다. 다음 주 초음파에서는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고, 지금 출혈 자체가 없는 상태라서 자연 배출은 어려워 보이니 아마 수술을 해야 될 거라고. 임신 증상도 여전하고 입덧도 아직 있는데 자연도태 중이라니.

아. 왜 꼭 나쁜 예감은 틀리질 않는 걸까.

게다가 이 병원 선생님은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나는 원래 임신이 확정되어서 난임 병원을 졸업하면 이 병원으로 전원 하려 했었다. 여긴 조리원도 같이 운영하는 큰 병원이기에. 그런데 내 경우는 시술로 인한 호르몬 과다 투여로 인해 아기집이 크면서 근종이 3개나 엄청난 크기로 같이 자라고 있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이면 다음 임신이 확정되더라도 동일한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했다. 이 경우에는 본인들 병원에서는 산모를 받을 수 없고 대학 병원으로 보낸다고.

내 경우는 임신 중기부터 위험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산부인과에서는 나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임신과 동시에 바로 고위험 산모로 분류되며, 임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중기에는 배에서 근종이 만져질 정도로 자랄 수 있고 그에 따른 통증이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하물며 조산의 위험성도 굉장히 높다고 했다. 태아가 크는 호르몬과 근종이 크는 호르몬은 동일해서 같이 자란다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종 위치가 아기집에는 영향이 없단다. 그 얘기인즉슨 아기가 생기면 아기가 커 가는 동안 나만 아파 죽으면 된다는 얘기였다. 현재 초기인데도 가장 큰 근종이 6센티까지 커서 이것도 위험한데 임신이 계속 지속되면 12센티까지 클 수도 있다고. 일반 산부인과에서는 관리가 안 되는 수준이라고 했다. 아. 이러다 자궁파열 오는 건 아니겠지...

산 넘어 산이었다.

산부인과를 나서는데 어제와는 기분이 달랐다. 그냥 깔끔하게 포기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아 그냥 여기까지 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분이랑은 정반대로 하늘과 날씨는 너무 파랗고 맑았다.

***

어제는 이 난임 병원 놈들 시술 성공이 목적이 아니고 사람 하나 데려다 놓고 희망 고문하고 나서 PGS 니 부부 유전자 검사니 등등 돈 억수로 들어가는 검사시키고 나서 시험관 5차, 6차까지 끌고 가서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야? 라면서 분노를 터트렸다.

시험관 1차에 쓴 돈이 약 3백만 원 가까이니 시험관을 신선으로 3차만 진행해도 돈 천만 원 꼴이다. 수정란 검사는 개당 30만 원씩이라고 했고 한, 두 개만 검사하는 게 아니라서 몇 백은 기본으로 나오며 각종 검사는 인당 5~60만 원씩이었다. 난임 부부의 시술 차수가 늘어나고 검사 종류가 늘어나면 병원은 떼부자가 되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돈을 퍼부으면 시험관의 성공률이 높은가? 그것도 아니다.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다음 주에 마지막 초음파를 보고 수술이 끝나면 남은 냉동 배아 하나만 이식해보고 그 이후에 내가 난임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만약 그 냉동 배아가 해동과정에 소실되면 추가 시술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또다시 이 지옥 같은 과정을 진행하고 싶지 않고 매일매일을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를 걸면서 하루하루 조바심 내면서 살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성공한다 한들 이젠 그다지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아마 지금 성공했다면 행복감이 최고치였겠지.

무엇보다 내 손으로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시간들을 견디는 짓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시험관을 진행하면서, 임신인 것을 알게 되면서 어쩌면 아이가 있는 삶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원래대로 아이가 없는 삶 역시 다시 편안하게 진행될 것을 알기 때문에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나는 할 만큼 다 했으니까. 최선을 다하니 후회가 없다는 말은 대학 수능 시험 때도 안 해봤는데 이렇게 하게 되는구나.

이 매거진의 마지막 글은 '전 시험관 1차에 임신에 성공했습니다. 다음은 튼튼이의 임신 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시험관으로 지치고 힘든 분들 제 로또 기운 받아 가세요!'라고 끝맺는 것이 목표였는데 인생이 내 마음대로 굴러가면 인생이 아니지. 이렇게 '난임 일기는 실패로 종료하겠습니다'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것도 내 인생인 걸.
 



· 업데이트 날짜: 2020.12.15
· 해당 글은 브런치 작가'당근쥬스'의 작품으로 최신 글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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