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채취 후 배아 이식까지 (5일 배양과 3일 배양)
끔찍하고 힘든 과배란 과정을 거친 뒤 나는 전신 마취를 하고 15개의 난자를 채취했다. 수술 대기실 모니터에는 정신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접수-대기-수술-회복 순서로 돌아가고 있었다. 남편은 말했다. 여기는 무슨 아기 만드는 공장이냐며. 남편 정자 채취는 금방 끝났을 테고 난 수면마취를 했기 때문에 대기-난자 채취-회복까지 약 2시간 반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채취 후에는 몸에 무리가 갔기 때문에 좋은 음식을 먹고 며칠 쉬며 몸을 만들고 나서 이식을 진행해야 한다. (동결 이식 제외) 남편은 고기를 싫어하는 나에게 강제로 소고기를 먹였다. 안 그래도 병원비도 많이 드는데 몸 만든다고 소고기를 이리 사 먹어대야 하니 진짜 가계가 휘청거린다.
병원에서는 난자 10~15개 채취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이것보다 적으면 양질의 수정란을 만들어 내기 어렵고 이보다 많으면 과난소증후군이라는 무서운 부작용을 겪게 된다고 했다. 많이 채취되었다고 해서 또 그 난자가 전부 퀄리티가 좋다는 보장도 없다. 공난포가 나오거나 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그래서 딱 적정한 개수가 나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했다.
난자가 많이 채취되는 경우 3~40개 이상도 채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과다하게 자극된 난소가 퉁퉁 붓고 복수가 차올라서 신선 이식이 불가능하다. 물론 적게 채취해도 상태에 따라 복수가 차오른다. 복수가 차오르면 배의 통증이 엄청나다고 한다. 심하면 응급실에 가서 복수를 강제로 빼내야 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대부분은 자연 배출을 위해 이온 음료를 몇 리터씩 마신다.
나는 복수가 찬 것 같진 않았는데 혹시 몰라서 전엔 살찔까 봐 마음대로 못 마시던 이온음료를 있지도 않은 복수 핑계를 대고 박스로 사놓고는 신나게 퍼마셨다. 역시나 포카리는 참 맛있었다.
나는 채취 개수도 좋았고 난소 상태도 양호했다. 덕분에 채취 후 바로 신선 이식이 가능했다. 채취 후 여자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신선 이식이 불가능해서 모조리 동결로 진행한다. 우리의 난자와 정자 상태는 괜찮았는지 병원에서는 5일 뒤 이식을 하겠다고 했다. 아, 나는 3일 배양이 아닌가 보네? 배양 상태에 따라서 혹시 미리 오라고 할 수도 있으니 병원에서는 전화기를 잘 보고 있으라고 했다.
이식은 채취처럼 금식하거나 렌즈나 액세서리를 다 빼야 한다거나 네일아트를 다 제거해야 한다거나 하는 절차는 필요 없었다. 마취를 하지 않으니까. 마취에서 깨어나는 몽롱한 그 기분이 너무 싫었던 터라 마취를 안 하는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회복실에서 마취가 깰 때 얼마나 많은 헛소리를 지껄였는지는 회복실 간호사만 알 거다.
5일 뒤 다시 찾은 병원 수술실에서 선생님은 내 배아 사진을 보여주셨다. 내 배아들은 4일 배양과 5일 배양이 섞여서 나왔다고 했고 오늘은 4일 배양 하나와 5일 배양 하나를 이식하겠다고 했다. 이식은 정말 간단했고 아프지도 않았다. 오분도 채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 같았고 난 멀쩡한 정신으로 침대에 실려 회복실에 가서 착상이 잘 되라고 삼십 분 정도 가만히 누워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식 날은 마취를 안 해서 보호자가 필요 없는데 남편은 굳이 반차를 내고 날 기다려줬다.
그리고 이식하면 최소 이틀은 누워만 있으라고 해서 정말 말 그대로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원체 와식생활을 좋아하는 나였던 터라 이게 웬 개꿀이냐 싶었다. 혹시라도 착상을 방해할까 봐 배에 힘들어가는 행위는 일절 하지 않아서 결국 변비가 생겼다. 그 정도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하지만 그냥 마음이 불안했다. 어떤 선생님은 그러던데. 배변하는 정도로 힘줘봤자 수정란이랑 애 안 튀어나온다고 ㅋ
***
난자 채취 전에 병원에서 처치 동의서를 쓰는데 수정 과정에서 추가 처치가 있으면 그냥 병원에서 알아서 진행하고 나는 나중에 추가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일일이 수정 때 이벤트마다 병원에서 나에게 컨펌받으며 할 수 없으니 그런 것 같았다.
난자를 채취하고 나면 병원 배양팀에서는 뽑아낸 난자 위로 채취한 정액을 선별해서 뿌린 뒤 수정란을 만든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처리 방법이고 여기서 수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세 수정을 시행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 난자 안에 선별한 정자를 강제로 주입해 주는 것이다. 이 미세 수정은 꽤 많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몰랐는데 우리도 미세 수정을 했다고 했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수정된 줄 알고 거 보라고 우리는 건강하다고 김칫국을 또 퍼마셨다가 미세 수정했다는 말에 둘 다 시무룩... 만일 난자의 벽이 두꺼워서 수정이 안될 경우에는 난자 벽을 깎아내어 수정란이 되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정란을 만들어 낸다는 말로 이해했다.
난임 부부들의 배아 성적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3일 배양인지 5일 배양인지이다. 물론 배아 등급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등급은 사실 성공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내 건 B등급 정도라고 최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고 하셨다. 대학교 다닐 때도 B학점 많이 받았는데 난임 병원에서도 B네.
하위 단계 등급을 받아도 성공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선생님들은 딱히 배아 등급은 신경 안 쓴다고 하셨다. 그리고 등급은 배아 외적인 모양으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등급의 배아가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유전자가 좋은지 나쁜지는 추가 검사를 시행해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외관으로 평가된 배아 등급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
난임 병원 통계상으로 5일 배양 배아를 이식했을 때 3일 배양보다 착상률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이 5일 배양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3일 배양 배아를 이식한다. 물론 3일 배양으로 임신에 성공하는 케이스들도 많다.
5일 배양은 착상률이 높기 때문에 만 35세 이상인 나는 한 번에 두 개를 이식할 수 있었다. 3일 배양이었다면 3개를 이식할 수 있다. 만 35세 미만이면 5일 배양은 한 개, 3일 배양은 두 개를 이식할 수 있다. 나라에서는 다태아를 권장하지 않기 때문이 이런 제약사항이 있다고 했다. 이 배아들이 쌍둥이가 될지, 삼둥이가 될지, 단태아가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수정란이 세포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5일까지 실험실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빨리 3일 배양 배아를 자궁으로 이식한다. 실험실보다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하니. 고비를 넘기고 5일 배양까지 가면 그 배아는 튼튼한 배아이다. 실제로도 5일 배양을 이식한 경우 성공률이 확 올라가기 때문에 많은 난임부부들이 본인들의 배아가 5일 배양 배아가 되기를 기대한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5일 배양을 선호한다고 했다. 내 배아들은 다행히 잘 자라서 4일 배양과 5일 배양이 섞여있었다. 채취 개수나 배양 일수나 조짐이 좋았다.
***
내가 선택한 병원은 배양기술이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병원이었다. 채취하고 이식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 내 난자 15개 중에 몇 개나 수정이 되고 몇 개나 동결배아가 나올까 하며 꽤 기대를 하고 있었다. 동결배아만 많이 나와주면 신선 이식에 실패하더라도 과배란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리한가. 게다가 신선 배아보다 얼었다가 녹여서 살아남은 동결 배아는 훨씬 더 튼튼해서 임신 성공확률이 확 오른다고 하니 동결에 무한한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동결 이식은 비용도 신선 이식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난임부부들은 다들 신선 1차에 성공하는 것은 로또라고 한다. 그만큼 신선 1차에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거겠지. 그래서 동결이 많이 나오는 게 관건이라고. 다들 보니 보통 동결배아가 7~8개 정도는 나오던데. 아, 동결배아가 많이 나오면 보존비가 백만원이 넘던데 그 비용을 어쩌나? 그것도 매 년 납부하는 비용이던데 동결 많이 나오면 해마다 백만원 넘게 내야 하네? (배아 보존기간은 최대 5년이다)
이렇게 신나게 김칫국을 퍼마신 나는 결과지를 받아 들고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15개 채취, 11개 수정, 2개 이식, 남은 9개를 동결 시도했으나 성공한 동결배아 1개.
한 개라니.
9개 중에 살아남은 것이 단 한 개밖에 없다니.
동결에서 이렇게 미끄러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적어도 동결배아가 서너 개는 나와야 하지 않나? 저거 녹이다가 죽으면 어쩌지. 그럼 나 또 과배란 해야 해? 동결배아는 해동하는 과정에서 소실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던데. 난 어떡해.
선생님은 내 나이에ㅠ 5일 배양 동결이 나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하셨다. 아 그래. 저 선생님은 나 노산이라고 말하길 좋아하시는 분이지. 아니 근데 그럼 3일 배양으로 동결을 더 많이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굳이 5일 배양까지 끌고 와서 내 동결배아를 단 한 개만 남게 만든 것일까.
마구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어디다가 낼 것이며 이제 와서 화를 내봐야 무엇하나. 이미 상황은 끝났고 결과는 나왔는걸.
남편은 그거 하나 얼려서 뭐하냐고 했다. 이 자식이 지가 과배란 하는 거 아니라고 진짜 쉽게 말하네. 이 하나라도 얼마나 소중한 건데! 난 소중하디 소중한 내 5일 배양 동결 배아 한 개를 고이 보존하겠다고 했다. 한 개 보관하는 데는 비용이 백 몇십만 원이 아닌 37만 원을 내면 되었다. 7~8개 나올까 봐 보관비 걱정을 하며 김칫국을 퍼먹은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두 개라도 나왔으면 이렇게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을 텐데.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동결 많이 나올까 봐 돈 걱정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두 개라도 나왔으면 소원이 없다고 말하는 내 모습이라니.
이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든 남편은 나에게 더 이상의 과배란은 없다고 했다. 내가 고생하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과배란 주사에 지쳐 잠들었을 때 혼자 울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만일 신선 이식에 실패하고 저 하나 남은 동결 배아 이식도 실패하면 다시 과배란 과정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 업데이트 날짜: 2020.12.10
· 해당 글은 브런치 작가'당근쥬스'의 작품으로 최신 글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하세요!
· 원문보기: https://brunch.co.kr/@kkio09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