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달후에 가이드

딩크부부, 난임부부가 되다 (난임에세이)

딩크 부부, 아이를 갖기로 결정하다.

우리는 딩크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전 우리는 아이에 대한 의견이 일치했고 결혼해서 둘이서 즐겁게 살면 매우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 후 상황은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은 마주칠 때 마다 인사치레로 아이 소식을 물었고 우린 딩크라고 하면 왜 애를 안낳느냐며 애가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고 다들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게다가 둘이 결혼해서 애 하나를 안낳았으니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 인구감소의 주범이라는 이야기까지.

아. 이 나라에서 딩크부부로 사는게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걸까.

그 와중에 시아버지께선 남들 다 있는 손주가 나 때문에 없다 하셨고 시어머니께선 나에게 얼른 애 하나만 낳아서 시댁에 두고 일을 나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결혼 전부터 마뜩잖았던 시부모님의 이야기들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 가슴속에는 응어리가 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과 크게 싸웠으며 우리 집은 '너희 둘이 잘 살라'면서 별말씀 안 하는데 왜 시댁만 가면 아이 타령을 매번 들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남편과 매번 싸우기도 지쳐가고 있었다.

아이 없이 살거라고 결혼 전부터 이야기를 했다는데 왜 부부의 의사는 무시하시는 건지. 하긴, 남들도 안듣는 말을 시부모님이 들으실리가. 아들인 남편의 말도 전혀 안 들으시는데 며느리 말을 들어줄 리 없지.

그리고 만일 우리가 생각을 바꿔서 아이를 낳아도 우리 부부가 낳을 일이고 키워도 우리 부부가 키울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무슨 시부모님의 장난감 마냥 이야기하시는 것은 정말이지 듣기가 싫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내가 무슨 애를 낳아주러 이 집에 들어온 사람처럼 느껴져서 더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누적된 시간들에 따라 우리 부부의 관계도 악화되어갔다. 딩크로 살며 둘이서 행복할 줄 알았던 우리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상황이 나빠지기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아이 타령에 질려가던 중 갑자기 남편이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에는 '갑자기 너까지 왜 이래!'라고 했지만 워낙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이 갑자기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니고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하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싶어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지금 남편과 둘이 사는 생활이 참 편하고 좋은데 왜 이 사람은 갑자기 나와 자기 사이에 아이를 만들어 넣고 싶어 하는 걸까. 가뜩이나 시댁과의 관계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중인데 아이까지 생겨버리면 그 지긋지긋한 참견과 간섭을 어찌 이겨내나. 난 미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

딩크 부부에게 아이 이야기가 나온 순간 그 이후의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다.

아이를 갖거나, 이혼하거나.

아, 세 번째 선택지가 있다. 난임이 아닌 진짜로 불임이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이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니깐 두 가지로 일단 보는 것이 맞을 듯싶다.

아이 이야기가 나온 순간 전과 같은 둘만의 부부생활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없던 일로 무르면 되지 않느냐고? 한쪽에서 말이 나온 순간 그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어느 한 사람이 이미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이상 상대방이 아이 낳기를 거절하면 아이를 원한 사람 쪽에서는 '상대방 때문에 나는 아이를 갖거나 키울 수가 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이 경우 먼저 아이를 욕망한 사람이 느끼는 '결핍'이 반대쪽에 굉장한 부담을 주게 된다.

나 역시 내가 아이 낳기를 거절하면 가뜩이나 위태로운 남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질까. 혹시 남편이 나 때문에 아이 없이 살 수밖에 없었다고 늙어서 내 탓을 할까.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불어 둘이 사는 게 이제 심심해졌다는 남편의 멘트에 심한 배신감으로 부들부들...

6년이나 둘이서만 놀아서 이제 지루하다니.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 나도 너랑 노는 거 이제 별로 재미없거든?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어떤 날은 나름 지성인답게 토론도 하면서 과연 우리 둘 사이에 정말로 아이가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와인 한 잔 기울이던 주말 저녁 이제는 우리 닮은 아이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남편 말에 흔들렸다. 젠장.

***

그렇게 우리도 아이 하나를 낳을까? 싶어서 피임을 하지 않은지 6개월.
아이 소식은 없었다.

둘 다 건강한데 뭐, 다음 달에 생기겠지.

1년째.
안 생겼다.

나는 산부인과에, 남편은 비뇨기과에 갔고 둘 다 정상이라는 결과지를 받아 들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일까?

산부인과 선생님은 나에게 한시라도 빨리 난임 병원에 가서 '시험관'을 하라고 하셨다.
원래 자연임신 - 인공수정 - 시험관 시술 순서 아니냐고 했더니 나보고 지금 노산인데 인공수정 같은 소리 하고 있다고 하셨다. 하하. 쿨한 걸 넘어서서 되게 무례하시네.

내 동생 말로는 조리원에 마흔도 수두룩 하다던데 왜 나보고 노산이래?

나는 노산이 맞았다. 여자 나이가 만 35세가 넘으면 노산이라고 한다. 난 이미 훌쩍 넘어 마흔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정말 슬픈 현실이지만 난임을 여자 문제로 치부하는 데는 이 여자 나이가 중요하긴 했다. 수많은 난임 병원들에서는 여자 나이 만 35세를 기준으로 가임력이 서서히 떨어지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팍팍 떨어지는 그래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의학적인 팩트였으니까.

여하튼 시험관이 얼마나 여자 몸만 힘들고 돈이 많이 든다는데 나보고 시험관을 하래?? 진짜 웃기는 병원이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론 한약 먹으면 아이가 생긴다던데....
유명한 한의원을 소개받아서 우리 둘 다 침을 맞고 약을 한 달치 넘게 먹었다.

그래도 아이는 안 생겼다.

***

계속 임신 실패 결과지를 받아 들자 나는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다.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나는 매 달 주기가 일정하고 배란이 규칙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일년이 넘게 아이는 쉽게 생기지 않았고,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다시 둘이 즐겁게 살자 라고 생각하던 찰나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그 여파로 인해 내가 다니던 회사는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그 힘든 시기에 시부모님의 말 때문에 결국 사달이 났고 서로 보지 말자는 얘기가 오갔다.

처음엔 이 상황이 너무 속이 상해서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워서 엉엉 울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건 내가 굳이 머리 싸맬 상황이 아니었다.
나 그럼 이제 해방이야?
비록 그간의 상처받은 말들에 대한 사과는 못 받았지만(어차피 앞으로도 못 받겠지만) 어쨌든 난 이제 더 이상 정신과에 갈지 말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상황 판단을 마무리하고 나자 지난 6년간 시댁 이야기로 지긋지긋하게 싸우며 사라졌던 남편에 대한 마음이 다시 생기는 것을 느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온 후 이렇게 당신에 대한 마음이 좋아진 것은 아마 이때가 처음인 것 같다. 그만큼 우리의 결혼 생활은 시부모님의 간섭이 심했고 그 스트레스로 나는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에게 물었다.
시험관까지 해서라도 아기가 갖고 싶어?
남편은 잠시 망설이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래. 드디어 당신 부모님 간섭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우리 부부의 의사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됐네. 기다려도 아이가 안생기니까 시험관 시술이라는 것을 해보자. 이 기회에 겸사겸사 둘 다 건강검진 받는다고 치지 뭐.

그렇게 우리는 난임 병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 업데이트 날짜: 2020.12.10
· 해당 글은 브런치 작가 '당근쥬스'의 작품으로 최신 글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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