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관 조영술 후에 임신이 더 잘 된다?
환자분들이 종종 나팔관 조영술을 하고 난 후에는 임신이 더 잘 된다고 들었는데 맞는 이야기냐고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근거 없는 낭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팔관은 내부의 직경이 약 1m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가는 관입니다. 이 가는 나팔관을 조영제가 통과하게 되면, 통과하는 속력이 매우 빨라지게 되는데, 이것이 대부분 나팔관 조영술 시술 중의 통증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똑같은 양의 물을 손에 떨어뜨릴 때 컵으로 담아 떨어뜨리는 것보다 물총으로 쏠 때 훨씬 더 아픈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이렇게 나팔관을 조영제가 빠른 속도로 통과하면서 막혀 있던 나팔관이 뚫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렇다면 임신율이 증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말 그럴까요?
실제로 나팔관 조영술이 임신율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는데요,
2004년에 Human Reproduction이라는 난임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럽 생식학회지에 실린 한 논문에선 자궁내막종이라는 난소혹을 가진 난임 여성에게 Lipiodol이라는 지용성 조영제를 사용하여 나팔관 조영술을 한 사람들이 나팔관 조영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임신율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죠.
참고로 이 실험에 참가한 여성들은 모두 나팔관이 막혀 있지 않았고, 다른 난임의 원인이 없었던 원인불명의 난임 여성들입니다. 즉, 나팔관이 막혀 있지 않은 자궁내막종을 가진 난임 여성들에게선 나팔관 조영술을 하는 것이 임신율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자궁내막종이 없는 난임여성들에서는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사용하는 조영제 종류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7년 5월에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이라는 전 세계 에서 가장 유명한 의학저널에 실린 한 논문에서는 "지용성 조영제를 사용해 나팔관 조영술을 한 경우, 수용성 조영제를 사용한 경우보다 이후 임신율이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실린 바 있죠.
그 원인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저자들은 기존의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추측했는데요,
지용성 조영제를 사용하였을 경우 나팔관을 살짝 막고 있던 찌꺼기 등을 제거하는 효과가 수용성 조영제에 비해 더 클 것이며, 지용성 조영제가 복강 내 백혈구의 탐식작용을 증가시키고 자궁내막의 수용에 영향을 미쳐 착상이 더 잘 되게 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점입니다.
단, 지용성 조영제에도 단점은 있는데요 매우 드물긴 하지만 혈관 내로 조영제가 들어가게 될 경우 알러지 반응에 의해 쇼크를 일으키거나 지방 색전으로 혈관을 막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수용성 조영제를 사용하는 것보다 영상의 화질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죠. 따라서 각 병원에서는 이러한 효과와 위험성을 고려해 지용성 혹은 수용성 조영제를 각자의 판단 하에 선택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감수: 이응석 산부인과 난임 전문의